부산 남포동 포장마차 /라면우동포장마차
부산 남포동 갔을때 포장마차가 너무 많이 있는데 안에서 라면에 소주를 나시더라구요??
포장마차에서 소주의 감성을 느끼고 싶어 포장마차로 향했습니다.
좀 분위기 있어보이나요??ㅎㅎ
분위기도있고 안주도 많고 술이 술술 들어 갔습니다.
튀김2개와,떡볶이,라면 소주1병 이렇게시켰습니다.
튀김류는 다시 따뜻하게 튀겨주시더라구요. 너무 좋았습니다.
이렇게 시킨 음식들이 다나왔습니다.
너무 지저분하게 먹었죠??..대충찍고 빨리먹을 생각만 있었나봅니다.
솔직히 여기선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잖아요??
맞습니다..맛을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떡볶이는 손님들이 많아서 양념이 덜 베여있고
색깔을 너무 이쁜데 ,,맛은 심심했고 라면은 밍밍했습니다^^
하지만 분위기에 먹는거니 소주한잔에 맛있게 먹고 나왔습니다.
저렇게해서 가격이 16500원 정도 나왔습니다.
분식집에서 꽤많이 나왔다 생각했지만 소주를 시켰으니 그렇겠죠??ㅎㅎ
분위기에 먹는 포장마차 그래도 잘 놀다 왔습니다.
날씨도 좋은데 포장마차에서 소주한잔어떠신가요??ㅎㅎ
저는요즘 진로가 맛있더라구요..ㅎㅎ 진로에대해 알아볼까요?
진로란?
하이트맥주에 인수된 소주회사의 이름이자, 이 회사에서 1924년 처음으로 출시한 희석소주의 브랜드명입니다.
진로그룹의 모태가 된 제품으로, 일제강점기때 출시했으며 서민들이 즐겨찾고 마셨던 소주이기도 합니다.
소주 겉면에두꺼비가 있었기 때문에 두꺼비표라는 별명도 있었습니다.
원래 기업 연고가 이북인지라 창립 초기부터 이북에서는 영특함을 뜻하는 원숭이를 마스코트로 썼지만, 1953년 회사가 월남한 이후 남쪽에서 원숭이는 교활하고 음흉한 나쁜 이미지로 여겨져서 1년 간 고심하던 끝에 마스코트를 두꺼비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도입 초기부터 2019년 이전까지는두꺼비표 속 두꺼비가 딱딱해 보였던 모습이었다가 현재는 둥글둥글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바뀌었다고합니다.
진로의 역사
진로의 창업자는 황해도 곡산 공립 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장학엽(1903~1985) 씨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을 인용해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사직을 강요받고 교단을 떠난 이후 양조업에 뛰어 들었다고합니다.
그는 생산지와 생산방식의 글자를 각각 따서 ‘진로’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진(眞)’은 생산지인 진지에서 따온 글자로 ‘진지’는 원래 ‘참못’이라 불리던 물 좋기로 이름난 평남 용강 땅의 상징이었습니다.
‘로(露)’는 순곡(純穀)으로 소주를 증류할 때 술 방울이 이슬처럼 맺히는 것에서 착안했다고합니다.
장 씨는 경쟁이 치열한 양조업계에서 품질로 경쟁력을 만들었습니다.
진로 특유의 쓴 맛을 지닌 ‘흑국 소주’를 개발한 것입니다.
재래식보다 많은 양의 소주를 만들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쓴맛이 있어 일본식 소주와 차별되기도 했습니다.
진로는 1965년 주류업계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품질의 우수성과 함께 독창적인 마케팅 활동이 주효했다. 당시 진로는 ‘밀림의 바 작전’, ‘왕관(병마개) 회수 작전’ 등 기발한 판촉활동을 펼치면서 국내시장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진로는 제품의 다양화와 생산 증대를 통해 1975년 월 평균 생산량 100만 상자를 돌파했습니다.
이는 전년대비 1.4배 증가한 수치로, 당시 전국의 소주 총 생산량 가운데 42%에 달했습니다.이후 시장경쟁이 치열해졌지만 진로 소주의 생산량은 계속 늘었고 진로는 1980년 점유율 39.2%, 1981년 40.0%로 압도적으로 높은 점유율을 유지했습니다.
1982년에 들어서는 1973년 이래 소주업계의 생산을 규제해 왔던 주정 배정제(술의 원료인 주정의 공급량을 제한하는 제도)가 공정거래법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부분적으로 해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진로의 생산량은 더욱 늘었고, 시장 점유율은 43.2%로 크게 신장됐습니다.
1983년과 1984년에도 진로 소주는 각각 41.5%, 41.3%로 높은 점유율을 이어갔습니다.
진로는 약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만큼 상표와 도수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트레이드마크(상징물) 역시 생산 초기부터 약 30년 간 ‘원숭이’를 사용했지만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 1954년 강한 번식력과 장수를 상징하는 ‘두꺼비’로 변경했다고합니다.
진로 소주의 도수는 1924년 첫 출시 당시 35도였습니다.
이후 1965년 30도, 1973년에 25도로 점차 낮아졌고, 식량부족 문제로 정부가 양곡을 원료로 한 증류식 소주 생산을 금지해 알코올을 물에 희석시키는 지금의 희석식 소주가 대량생산에 돌입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25도 소주가 30년간 사랑받았습니다.
25도의 벽은 1998년 23도짜리 순한 소주 ‘참이슬’이 출시되며 깨졌습니다.
당시 파격적인 도전으로 의견이 분분했지만 출시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25도짜리 ‘진로골드’는 현재도 일부 마니아층을 위해 소량 생산되고 있다고합니다.
그리고 지난 4월 1970년대 과거 디자인을 복원·재해석해 출시한 ‘진로이즈백’의 도수는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저도수의 편한 음용감을 위해 16.9도로 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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