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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사건 아시나요?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사건 아시나요?

정말 오래되었지만, 저의 기억에 안타까웠던 사건으로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바라며,,포스팅해보겠습니다.

 

아이의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하고있었고

당시 범인이 임신중이라 더충격을 주었습니다.

("박초롱초롱빛나리" 어린이의 생전모습)

 

 

1997년 8월30일 대한민국을 떠들석하게 했던 어린이 유괴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괴된 어린이는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박초롱초롱빛나리" 양 이었습니다.

범인 전현주는 1997 830일오후 3시경

서울 잠원동 한신8 아파트 부근 뉴코아백화점문화센터에서

영어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서울원촌초등학교 2학년 박나리를 유인했습니다.

 

  전현주는 8월30일 오후 6, 8월31일 오후 3 52, 9 3분까지

세차례에 걸쳐 명동과 남산 부근의 공중전화에서

박나리의 부모에게 2천만원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당시 박 양 유괴 사건 용의자 몽타주)

 

​곧이어 이 유괴사건은 공개 사건으로

수사가 전환됨에 따라 유괴 사건이 전국으로 퍼지게 됩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물론 전국에서 박 양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편지도 쓰고 기원도 하고 기도도 했습니다.

​9시 뉴스에도 나오고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진 가운데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대통령까지 당시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을 격려 방문하면서유괴범을 조속히 검거 하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범인은 당시 29살의 만삭 임산부였던 "전현주" 라는 여자였습니다.

 

전현주는 양의 집에 번째 협박전화를 양에게 수면제를 먹였으며,

수면제를 복용해도 배고픔으로 지친 양이 잠에 들지 않고

엉엉 울면서 집에 보내줄 것을 애원하자 양을 졸라 살해했다고 합니다.

 

전현주는 경찰조사에서 성폭행에 의한 강압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5명의 공범이 있다고 하다가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는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부에서는 임산부 혼자 하기 힘들다는 점을 들어 공범이 있을 있다고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전현주가 다른 공범들의 구체적인 인상착의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과
엉성한 수법, 적은 몸값을 이유로 단독범행임을 결론내렸습니다.

 

 

사실 전현주는 더 빨리 잡을 수 있었는데,

발신자 추적으로 명동의 모 커피숍까지 찾아 냈지만

설마 임산부가 범인이겠느냐 하며 전현주를 놔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법원에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처음에는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최종적으로  무기징역으로 확정 되어 수감 중에 있습니다.( 청주여자교도소에 무기수로 복역중)

 

그리고 전현주는 수감 된지 얼마 안되어 교도소에서 딸을 출산했으며

 

판결 이후 전현주씨가 출산한 아기는 18개월 후마국으로입양을 떠났다고합니다.

 

<여담>

박초롱초롱빛나리 양의 이름은  별 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양의 아버지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기의 점을 보러 갔는데 무당이 단명한다고 말해서,

이름을 길게 지으면 지을수록 장수한단 말이 있어 이름을 길게 지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박초롱초롱빛나리 8자로..

1997 9 8일이 8세를 맞이하는 생일이었다고합니다.

 

정말안타깝고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다시는 이런일이 생기지 않아야 합니다.